“무한성”만을 위해 극장에 찾아가다
2025년 8월,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극장가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스토리라인을 알았지만 극장을 찾았어요. 바로 세계관의 중심 “무한성”이 어떻게 영화로 탄생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예요. 이러한 기대 때문인지 일본에서는 개봉 3일 만에 흥행 수입 37억 엔을 넘어서며 2025년 일본 영화 최고 오프닝 기록을 세웠고, 한국에서도 개봉 2주 만에 누적 관객 3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무한성은 끝없이 확장되는 복도와 방들로 이뤄지며 상하좌우의 개념이 사라진 공간입니다. 건축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무한성, 제작진은 어떻게 설계했을까요? 오늘은 무한성 제작에 얽힌 비하인드를 건축과 설계의 관점에서 알아봅니다.

상식을 벗어나는 공간, 무한성
무한성은 《귀멸의 칼날》의 최종 보스인 키부츠지 무잔의 본거지입니다. 상현의 사(肆) 나키메의 혈귀술로 만들어진 이 공간은 현실 세계와 완전히 단절되었어요. 나키메가 비파를 타면 무한성의 구조가 순식간에 변화하고, 사람들은 의도하지 않은 장소로 순간 이동합니다. 귀살대원들이 무한성에 강제로 끌려들어가는 순간부터 이들은 출구도, 지도도 없는 미로 속에 갇히게 되죠.
무한성은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가장 기본적인 감각, 즉 상하좌우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공간입니다. ‘무한’성이라는 이름 답게 3차원적으로 무한히 확장되며 복도가 수직으로 세워져 있기도 하고, 방이 거꾸로 매달려 있기도 합니다. 심지어 같은 공간 안에서도 각각의 인물이 서로 다른 중력을 경험해요. 한 사람에게는 바닥인 면이 다른 사람에게는 벽이 되기도 합니다.
일본의 전통 건축 양식으로 무한한 공간의 새 장을 열다
일본의 유기체적 건축 구조
무한성에서 인물들은 벽을 뚫고 다음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합니다. 복도는 꼬이고 방은 기울어 있으며, 천장과 바닥이 교차하거나 뒤집히기도 해요. 이런 공간은 무한성만의 독특한 표현은 아니예요. 2010년 <인셉션>에서 도시가 접히고 회전하는 장면, 2014년 <인터스텔라>에서 시간이 공간처럼 펼쳐지는 5차원 서재, 2016년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건물들이 만화경처럼 변형되는 미러 디멘션까지, 최근 10여 년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무한한 공간을 구현하고, 캐릭터는 그 안을 자유롭게 이동합니다.

그런데 할리우드 영화들과 달리 무한성은 일본의 전통 건축에 그 뿌리가 있어요. 일본 건축은 공간을 필요에 따라 확장하거나 변형할 수 있는 유연한 구조로 만듭니다. 예를 들어 기둥과 보로 구조를 만들고, 그 사이를 장지문(쇼지)으로 채우는데요. 무한성은 이런 특성을 극단까지 밀어붙여 기둥 하나, 복도 하나가 추가될 때마다 공간이 무한히 뻗어나갑니다.
이런 양식은 일본의 전통 건축물에서도 자주 발견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교토의 청수사는 산 경사면에 목구조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떠받치는 방식인데요. 기둥 하나를 추가하면 공간이 하나 더 생깁니다. 이런 전통은 이후 건축을 생물처럼 성장하고 변화하는 유기체로 보는 메타볼리즘(metabolism)사조로 발전했어요.

불가능을 가능으로: 10년의 시간을 압축한 유포터블의 노력
3년 6개월의 렌더링 시간을 압축하다
유포타블은 2019년 TV 시리즈 26화에 무한성이 처음 나왔을 때 이미 3D 모델을 만들어뒀어요. 하지만 더 넓고, 더 촘촘하고, 더 정교한 무한성을 위해 그 모델을 통째로 버렸습니다. 이번 극장판은 극장판만을 위해 처음부터 다시 지은 무한성이예요.
그런데 새로 만든 무한성 모델이 너무 복잡했어요. 그래서 유포터블의 모든 컴퓨터를 동원해도 렌더링에만 3년 6개월이 걸린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3부작을 다 만들려면 10년이 넘게 걸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유포터블은 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먼저 클라우드 렌더링을 검토했어요. 외부 서버를 빌려서 렌더링 작업을 분산시키는 방식인데, 수억 엔의 견적을 받았습니다. 비용 문제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사내 시스템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서버실을 개조해서 발열 관리 시스템을 강화하고 고성능 서버와 장비를 증설했어요. 피크 시간에는 거의 모든 전력을 렌더링에 쏟아부었을 정도로 스튜디오 전체가 무한성을 만드는 데 올인했습니다.
하드웨어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모델러들은 무거운 3D 모델을 하나하나 경량화하는 작업에 들어갔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디테일을 줄이고, 렌더링 효율을 높이는 구조로 모델을 다시 짰습니다. 사내 엔지니어들은 네트워크 시스템을 개선해서 데이터 전송 속도를 높였고요. 이렇게 모든 부서가 협력한 결과, 렌더링 속도가 10배 빨라졌고, 3D 데이터를 다루는 작업자들의 작업 속도는 6.5배 향상됐다고 해요. 그래서 우리는 무한성을 2025년에 만나볼 수 있었던 것이죠.

무한성의 숨은 공신, 3ds Max
“귀멸의 칼날 CG 컷은 3ds Max와 플러그인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ufotable의 3D 감독 니시와키
3ds Max를 선택한 이유 ① 2D 일체화를 도와주는 고정밀 렌더링 플랫폼
극장판 무한성을 만들면서 제작진이 마주한 가장 큰 도전은 “무한”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무한성은 컷마다 다른 구조로 설계되어야 했어요. 같은 복도, 같은 방이 반복되면 관객은 금방 패턴을 알아채고 무한하다는 느낌을 잃게 되니까요. 그래서 제작진은 각 씬마다 새로운 공간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카메라가 어떤 각도로 움직일지, 캐릭터가 어느 방향으로 달릴지까지 전부 계산해서 공간을 짜야 했어요.
그래서 제작진은 3ds Max를 선택했습니다. 3ds Max는 무한한 공간 변형을 정확하게 시각화할 수 있는 건축적 3D 설계 도구이자, 2D 일체화를 도와주는 고정밀 렌더링 플랫폼이었기 때문입니다. 무한성의 제작팀은 2D 배경이 아니라 성 전체를 실제 3D 공간으로 모델링해, 인물의 움직임과 카메라 전환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도록 했어요. 3ds Max는 건축적 구조를 세밀하게 설계할 수 있고, 복도·방·계단 등의 배치를 한 공간 안에서 즉시 렌더링하고 재배치할 수 있어, 장면마다 다른 구조로 무한성을 재구성하는 작업에 최적이었죠.
특이한 것은 3D 레이아웃을 먼저 잡고 그 위에 작화를 얹는 방식이 아니라 애니메이터가 2D로 공간 구조를 먼저 스케치하면, 3D 감독이 그 구도에 맞춰 3D 모델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3D 작업자가 이미 완성된 구도를 보고 작업하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줄고 화면의 완성도도 높아질 수 있었어요.
3ds Max를 선택한 이유 ② 여러 버전을 실험해보는 데 유용한 툴
촬영 감독 테라오는 “한 장면을 위해 30개 버전 정도의 구조를 시험했다”고 밝혔어요. 화면에 나오지 않는 부분까지 세밀하게 만들었기 때문인데요. 덕분에 공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설득력이 생겼어요. 하지만 이러려면 복잡한 구조를 빠르게 수정하고 여러 버전을 시험할 수 있어야 해요. 3ds Max의 모디파이어 스택은 리스트 형태로 쌓이는 ‘직관적인’ 방식이예요. ‘Bend(구부리기)’, ‘Twist(비틀기)’, ‘Taper(줄이기)’, ‘FFD(자유형상변형)’ 등 건축물이나 정형화된 모델을 빠르고 쉽게 변형하는 데 최적화된 모디파이어가 많습니다. 이러한 직관적인 스택 방식은 작업 속도를 향상시킬 수 있었어요.
3ds Max를 선택한 이유 ③ 다양한 플러그인을 사용할 수 있다
ufotable의 3D 감독 니시와키는 “귀멸의 칼날 CG 컷은 3ds Max와 플러그인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무한성 편은 3ds Max에 여러 플러그인을 조합하며 액션씬의 복잡한 표현들을 할 수 있었어요. 예를 들어 루이 전투《귀멸의 칼날: 나타구모산 편》에서 나오는 실 기술은 tyFlow라는 플러그인으로 표현되었는데요. tyFlow는 당시 베타 버전이었던 무료 플러그인이었는데, 그 범용성 덕분에 복잡한 실의 움직임을 구현할 수 있었죠. 렌더링에는 V-Ray를, 이펙트에는 PhoenixFD를 사용했습니다.
“주인공” 무한성: 길이 없는 공간에서 길을 만드는 인간을 상징하다
무한성이 속삭이는 허무주의
무한성이라는 공간은 시각적 스펙터클만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이 공간 자체가 작품의 핵심 주제, 즉 허무주의와 인간의 의지 사이의 대결을 표현하는 장치예요. 키부츠지 무잔과 상현의 귀들은 공통된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약하고, 덧없으며, 노력해도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무한성은 이런 허무주의를 건축 언어로 번역한 공간입니다. 아무리 달려도 끝이 없고, 아무리 싸워도 공간은 계속 변하며, 인간의 힘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구조. 이 공간 안에서 귀살대원들은 자신들의 노력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체감하게 됩니다.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의 의지
하지만 작품은 바로 이 절망적인 공간 안에서 인간의 의지가 빛나는 순간들을 배치합니다. 시노부는 상현의 이 도우마 앞에서 자신의 칼이 목을 자를 만큼 강하지 않다는 명확한 한계를 느꼈지만, 동생 카나오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독으로 가득 채운 미끼로 만들었습니다. 젠이츠는 번개의 호흡 중 제1형밖에 사용하지 못했지만, 스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단 하나의 기술을 극한까지 연마해 제7형을 창조했어요. 탄지로는 아카자가 제안한 “영원한 힘”을 거부하고, 가족과 동료들을 지켜온 기억을 떠올리며 지극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이들의 의지는 단순히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었어요.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 그 마음이 무한성이라는 절망적 공간 안에서도 빛을 잃지 않게 만든 원동력이었습니다.
키리야의 지도 – 혼돈을 질서로
이런 인간의 의지와 대비되는 것이 바로 무한성이 표현하는 허무주의입니다. 이 공간은 방향감각을 잃게 만드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어요. 어디가 출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심지어 자신이 지금 서 있는 곳이 바닥인지 벽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은 공간을 파악할 수 없을 때 가장 큰 불안을 느껴요. 오징어 게임에서 구불구불한 계단 공간이 참가자들을 압도했던 것처럼, 무한성 역시 예측 불가능성 그 자체가 무기입니다. 나키메가 비파를 한 번 튕길 때마다 공간이 재배치되고, 귀살대원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 공간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무한성은 “인간의 노력은 무의미하다”고 속삭이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작품은 이 예측 불가능성을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바로 키리야의 지도 그리기예요. 귀살대를 이끄는 어린 지휘관 키리야는 까마귀들을 무한성 곳곳에 보내 정보를 수집합니다. 까마귀들이 보내온 단편적인 정보들을 모아, 그는 붓으로 2차원 도면을 그려나가요. 3차원으로 무한히 확장되고 계속 변화하는 공간을, 평면 위의 선과 점으로 기록하는 행위. 이것은 단순한 지도 제작이 아니라 혼돈을 질서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건축가가 복잡한 건물을 2D 도면으로 이해하듯이, 키리야는 무한성이라는 공간을 도면으로 장악하려 했습니다. 공간을 파악한 자가 공간을 지배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죠.
창작자의 파트너, 오토데스크
무한성은 작품의 주제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그 공간을 현실로 만든 건 제작진의 노력, 그리고 3ds Max였죠. 방대한 구조를 빠르게 설계·수정하고, 수십 개의 버전을 반복 실험하며, 2D 작화와 3D 공간을 정교하게 융합했습니다. 무한성처럼 기술은 창작자의 세계를 시각화합니다. 상상력의 파트너로서 기술을 만드는 오토데스크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다음 아티클을 기대해 주세요.
